(주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 고춧가루 안 쓰는 가게는 없다.
고깃집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한식을 다루는 식당에서 고춧가루는 쓰지 않는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10년 - 15년 전까지만 해도 국산, 국내산 김치와 고춧가루를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미친듯한 물가상승으로 이젠 국산, 국내산 보다 중국산 김치, 중국산 고춧가루를 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나 또한 그 물가를 이기진 못했다.
이렇듯 식당을 하면서 꼭 사용해야 하지만 가격부담이 많이 되는 향신료를 꼽으라면 나는 고춧가루를 1등으로 뽑겠다.
# 고춧가루 버려가며 연구한 이유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 고깃집을 시작했을 때는 제일 저렴한 고춧가루를 사용했다. 겉절이, 비빔국수, 김치찌개 등 많은 곳에 사용하긴 했지만 중요성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또한 국산 고춧가루와 중국산 고춧가루의 가격차는 거의 3배 정도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장사를 했다.
그렇게 장사를 하던 중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손님이 떠난 테이블을 보았고 손님들이 남긴 밑반찬과 사이드 메뉴를 보게 되었다. 대부분 빨간 양념장을 사용한 음식들이었다. 처음엔 양이 많았겠거니 별생각 없이 생각하다 그 횟수가 늘고 양이 많아지게 되니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레시피가 잘못되었든 식자재 관리가 잘못되었는 해결 해야만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숯 문제를 해결할 때와 마찬가지로 식자재 마트,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고춧가루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만들고, 버리고를 반복하며 문제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무식하면 용감한 법.
# 국산 고춧가루와 중국산 고춧가루
일단 원산지에 따른 고춧가루 차이를 먼저 파악해야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중국산 고춧가루보다 국산 고춧가루의 맛이 더 좋았다. (조심스러운 개인적인 의견) 그렇다고 식당에서 사용하기에 중국산 고춧가루가 부적합한 것은 아니다. 문제가 있다면 이미 많은 음식점에서 사용하겠는가? 맛과 향의 결이 다를 뿐이다. 다만, 국산 고춧가루의 맛이 더 좋다 생각한 이유는 고춧가루를 대량으로 쓰는 메뉴에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를 잘 느낄 수 있었던 음식은 비빔국수였다. 그래서 비빔국수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동일한 레시피로 동일한 양과 동일한 굵기의 고춧가루를 사용하여 테스트를 했다. 같은 온도, 같은 시간으로 숙성하였고 최소 7명 이상의 사람들을 상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결국은 판매자의 선택이지만 참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주의) 고추의 생산 지역, 말리는 방식, 취급하는 업체에 따라 모든 결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주의) 주관적인 생각이므로 주의 바라며 직접 테스트해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국산 고춧가루 100%
1.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맛
2. 은은한 단맛과 미세한 신맛
3. 자극적인 매운맛이 아쉬움
비빔국수는 면과 양념장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메뉴다 보니 고춧가루 차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메뉴였다. 같은 시간 동안 숙성하여 테스트를 했을 때 국산 고춧가루로 만든 비빔국수의 평가는 위와 같았다. (물을 뺀 면과 양념장의 양도 1g의 차이 없이 동일하게 진행) 우리를 포함 7명의 사람들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국수를 만든 나는 마지막에 평가)
재미있게도 가장 많았던 의견은 특색, 색깔은 다소 옅지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맛이라는 평가였다.
맛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깔끔 그 자체라는 평가였다. 고기와 같이 먹기 부담 없이 슥슥 넘어가는 맛이라는 의견과 동일한 설탕과 식초가 들어갔음에도 뒷맛이 개운하고 은은한 단맛과 신맛이 느껴진다는 평가도 있었다. 솔직하게 국산 고춧가루가 압도적인 차이로 우세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결과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무난하다는 평가였다.
# 중국산 고춧가루 100%
1. 익숙하고 친숙한 매운맛
2. 조금 더 자극적인 매운맛
3. 조금 더 당기는 매운맛
중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했다 해서 맛이 떨어진다는 평가는 없었다. 애초에 국산과 중국산 고춧가루 테스트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맛으로만 받아본 결과였다. 국산과 다르게 오히려 익숙하지만 당기는 매운맛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많았고, 7명 중 3명이 중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한 비빔국수에 손을 들어줬다.
내가 여기서 주목했던 평가는 익숙한 맛과 더 자극적인 매운맛이라는 점이었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음식점에서 사용 중이라는 뜻일 것이고, 더 자극적인 매운맛은 더 맵다는 뜻이 아닌 국산 고춧가루에 비해 중국산 고춧가루의 고추 특유의 향이나 풍미가 국산 보다 더 강할 수 있겠다는 말로 해석되었다. (맛있다는 것이 아니라 더 강할 수 있다는 것) 당황스럽지만 재미있는 결과였고,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테스트 결과 국산 고춧가루와 중국산 고춧가루는 각각의 다른 장점,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가격은 중국산이 압승) 개인 취향은 국산이 더 좋았지만 중국산이 못 먹을 정도로 퀄리티가 떨어지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 가게 빨간 양념장은 왜 아쉬웠던 것일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그동안 판매했던 빨간 양념장들의 모든 식자재를 다시 살펴보았고 레시피도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아주 높은 확률의 한 가지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 우리는 고춧가루를 잘 못 사용하고 있었다.
오픈 때부터 식자재 마트 한 곳을 지정해 두고 그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제법 규모가 큰 식자재 마트기 때문에 다양하게 고르며 구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지속적으로 방문했다. 인터넷이나 유통업체와 같은 제품도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벌크형 제품을 주로 구매했는데, 그 저렴함만 믿고 원재료명과 성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고춧가루는 가격만 다르고 다 똑같은 100% 고춧가루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사용했던 고춧가루가 100% 고춧가루가 아닌 혼합 고춧가루였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버렸다. 오픈하고 반년 정도 후 알아낸 사실이었고, 정말 창피했다. 이 이후부터는 모든 제품을 살 때 꼼꼼하게 원재료표시와 성분표를 확인하게 된 계기였다.
# 그럼 혼합 고춧가루(향신료)가 나쁜 거야?
혼합 고춧가루의 맛이 문제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분명 제품 고유의 특징이 있는 제품이다.
그동안 구매했던 동일 제품의 원재료를 확인해 보았고, 고추의 함량, 감미료의 종류와 양이 바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고, 고추분의 함량이 100%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합고춧가루는 완벽한 고춧가루가 아닌 조미료에 가깝다는 뜻이었다.
그 이유 때문에, 처음 우리가 설계한 고춧가루가 중심인 양념장이 아닌 애매한 무언가가 만들어졌던 것이었다.
혼합 고춧가루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100% 고춧가루를 사용했을 때 나오는 맛과 차이가 분명 존재한다. 혼합 고춧가루는 조미료, 감미료일 뿐 100% 고춧가루의 깔끔한 양념장 맛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섰다.
다시 테스트해보았고, 같은 양으로 만든 양념장을 비교했을 때 뒷맛이 다소 미끌거리고 조미료 맛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감미료가 들어가는 레시피에 혼합 고춧가루에 포함되어 있는 msg와 당분을 추가했으니 미끌거리는 뒷맛이 나올 수밖에 없단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고추분도 100%가 아니므로 레시피 양보다 적게 들어가게 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아무 생각 없이 재료를 사용했음에 반성을 했다. 보관 중이던 양념장은 폐기하고 고춧가루를 다시 구매해서 만들었다. 결과는 빈 그릇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재주문율도 소폭 등가했다.
# 좋은 고춧가루 좋지, 문제는 가격이지
일단 1차 적인 맛 문제는 해결했고,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고춧가루의 가격 문제였다.
고깃집이지만 밑반찬부터 찌개까지 대부분 메뉴에 고춧가루를 사용했기 때문에 고춧가루의 가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국산 고춧가루 듬뿍 사용하여 만들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밑반찬을 가격 받고 판매할 수도 없고, 사이드 메뉴의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도 없었다.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언젠가 손님들이 알아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싼 가격의 재료를 사용하여 비싸게 팔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판매할 수 있는 가격의 한계는 존재했고 그 가격에 맞는 재료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 그릇 3,500원 받는 비빔국수에 값비싼 국산 고춧가루와 청양고춧가루를 팍팍 넣어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우리들 판단이었다.
결론적으로 우린 고춧가루 가격과 일정 부분 타협을 했다. 전부 중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국산 고춧가루와 중국산 고춧가루를 배합한 레시피로 수정했고,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맛을 내려 노력했다. 해마다 오르는 물가와 해마다 비싸지는 고춧가루를 보다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나름의 탈출구라 생각했다.
# 어떤 고춧가루를 고를 것인가?
국산 고춧가루 좋다. 맛도 깔끔하고 은은한 단맛이 나서 양념장으로 만들기에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중국산 보다 국산이 더 끌리는 맛을 낼 수 있다고 본다. 탁 치는 자극적인 훅은 없지만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매운맛 조절을 통해서 더 효과적인 맛을 낼 수도 있다. 업장에서 사용하기엔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열심히 발품을 팔면 적당하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고춧가루를 찾을 수 있다. 배합을 통해 일정 부분 타협을 볼 수도 있다 생각한다. 어느 식당에서 국산 고춧가루와 김치만 사용한다는 문구를 대문짝만 하게 써 놓아 촌스럽다 생각했는데 반성했다. 훌륭한 선택이고 좋은 마케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중국산 고춧가루도 나쁘지 않다.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욘 없을 것 같다. 국산 고춧가루와는 결이 다르지만 잘 사용하면 국산 고춧가루만큼의 효과를 낼 수도 있고 첫맛에 탁 치는 훅이 있다. 심지어 보편적인 맛에 가깝다. 한국 식당 대부분이 중국산 김치와 고춧가루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일까? 어쩌면 더 대중적인 맛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본다. 익숙한 맛이랄까? (개인적 의견)
맛은 둘째치고 가격적인 매력이 분명 있다. 국산 보다 저렴한 건 사실이다. 단, 절대 속여 팔지는 말자.
베트남 고춧가루는 매운맛에 특화되어 있다. 국산 청양고추로 매운맛을 내기엔 한계가 있다. 중국산도 마찬가지다. 목표한 매운맛을 내려면 청양고춧가루를 때려 부어야 한다. 매운맛 잡으려다 맛도 달라질 수 있고 가격부담도 클 수 있다. 이럴 땐 베트남 고춧가루가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국산 청양고춧가루의 매운맛보다 10배 정도는 맵기 때문에 적은 양으로 효과적인 매운맛을 내고 싶다면 베트남 고춧가루를 배합해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
# 결론, 선택하기 나름
고춧가루의 굵기에 따른 사용방법, 보관법들은 인터넷에 검색만 해보면 다양하게 나오니 나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식자재, 재료는 쓸 만큼만 사서 빨리 쓰는 게 최고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한 정보는 따로 검색하여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어떤 고춧가루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이다.
1. 메인 메뉴 고춧가루 함량이 높다면 국산 고춧가루를 고려해 볼 것
물론, 비싸다. 비싸지만 제대로만 고른다면 비싼 만큼의 효과가 있다고 본다. 비빔국수, 쫄면, 김치찌개, 무침, 해물찜 등 고춧가루가 맛의 전반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메뉴라면 비싸더도 깔끔한 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하는 것이 괜찮을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택의 영역이지만 분명 국산 고춧가루는 강력하다.
대신, 국산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는 문구를 가게 어딘가에 대문짝만 하게 표시해 두자. 촌스러울 수 있지만 칭X오 맥주, 절임김치 이슈가 있는 중국산 제품에 민감한 요즘이라면 소소하지만 디테일한 마케팅 수단일 수 있다고 본다.
2. 메인 메뉴보다 사이드 메뉴나 밑반찬에 많은 양이 사용한다면 중국산 고춧가루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모든 메뉴, 국산 고춧가루 사용은 배 보다 배꼽이 커질 수 있다. 맛 중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게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원가와 판매가의 줄다리기라 생각한다. 목표한 맛에 가깝게 레시피를 잡을 수만 있다면 중국산 고춧가루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상차림 원가를 줄이는 것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생각한다.
단, 원가는 줄이고 판매가를 높게 잡아 차익을 많이 남기려는 차원에서의 무분별한 사용은 권장하지 않는다. 결국 사람들은 먹어보면 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한 음식은 만드는 우리보다 먹는 손님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좋은 음식은 먹는 사람들이 언젠가 알아준다. 대신 물가상승에 버틸 수 있도록 현명한 장사를 하도록 하자.
# 진짜 쉽지 않다.
주절주절 말이 많았다. 요리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장사를 하려면 고춧가루 하나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테스트하는 내내 포기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이 또한 공부가 될 거라 생각하며 버텼다.
덧붙여 지금 쓴 글이 올바른 정보인지도 100% 확신할 순 없다. 사람마다 경험치가 다르고, 입맛도 다르며, 절대미각도 아니고 장사천재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식할지언정 아무 생각 없이 장사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고춧가루의 굵기에 따른 사용법이나 보관법은 아니지만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작성한 글이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시고 참고 삼아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한다. 나도 아직 배울게 참 많고 쉽지 않다 생각한다. 무튼 다들 건강하게 번창하시길 바라며 고춧가루에 대한 첫 번째 글은 여기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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